망할...
경제위기 발생 -> 중소기업 몰락 및 도산 -> 수많은 실업자 들고 일어서다.
교과서 좌편향논란 -> 교과서 우익편집 -> 교사논란 -> 학부모/학생 논란 및 일어서다.
거짓논란 -> 국가청렴논란 -> 지도자논란 -> 수많은 사람 들고 일어서다.
제2 IMF 발생 -> 국가부도 -> 전방위 들고 일어서다.
일어서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저런 억압 발생 -> 전 국민 들고 일어서다.
누군가 대항군 발생 -> 전국적 반발 발생 -> 체포 -> 얼랄라?
미쳐.. 국가 전복 발생???
제기랄...
하루에도 몇편의 작품들이 각종 통신 및 동호회의 자료실을 채워나가고 있는 요즘.
만화책과 만화영화(Comics and Animaition)들이 이전에 비해 오히려 보기가 점점 힘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자신의 바쁜 일상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스스로의 취향의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요즘 들어서 범람하는 작품들 속에서 보면 볼수록 중간자적인 입장을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 스스로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이것저것 다 파악을 하려고 애쓰며
원작자던 감독이던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를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 작품이 핸드메이드 메이였습니다.
작품 하나에 이것은 쓰레기다, 명작이다, 보고 즐기면 그만이지 등의 이야기를 하는 기준과 잣대는 무엇일까요?
물론 그것은 개인적인 잣대, 개인적인 판단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핸드메이드 메이를 보고 판단하는 많은 분들의 기준은 어떠했을까요.
애니는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장난감같은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로리타, 메이드 등을 등장시켜 대리만족 및 대리배설을 표현하는 쓰레기이다 등등...
이런 평들의 기준은 어디이며 그 경계선은 어디일까요...
그러한 경계선을 생각하고 있다가 조금전에 너무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와서 여러 회원님들께서 말씀하시는 평들을 읽어봤습니다. 동일한 작품에서도 상당히 극단적인 평들이 엇갈리고 있더군요..
또한 우리나라에서 그렇게나 만화를 애들취급하고 있는지도...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왜 그런지...
문제는 작품을 이해하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어른과 아이를 구분할지... 단지 나이로만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른같은 아이와 아이같은 어른도 있으니까요.
그런 경계선 자체를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품을 몇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건담을 아시겠지요.
아이들에게는 건담은 단지 로봇물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철학이야기이죠.
0080 주머니속의 전쟁을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잘 이해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건담의 원작자인 토미노 요시우키가 언급한 세계관,
나는 건담을 새로운 세계관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고 했다
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 작품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예술을 하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것이 새로운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봤습니다.
J.R.톨킨이 만든 판타지란 세계관과 토미노 요시우키가 만든 우주세기란 세계관, 어느것도 지금 현재 현실적인것은 없지만
이들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세계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판타지 소설과 다양한 리얼로봇의 세계를 보면 그러하지요.
하지만 위의 두 세계에서, 혹자는 영웅과 액션, 권선징악을 좋아하고 혹자는 존재의 이유와 선악의 모호한 구분, 처절한 갈등을 더 좋아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세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리고 특별히 죄와 벌을 읽어본 사람이 더 머리를 싸매는 이유를 알 수 있겠지요.
지금 거기있는 나를 보면 어떠할까요.
슬프다라는 것은 작품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이기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슬픈지에 대해서는 각각 할 이야기가 다 틀릴 수 있습니다.
전쟁을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
그리고 군대를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해 틀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간접적이던 직접적이던 '군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이끌어가는 '미치광이'를 겪어본 사람은 좀 더 다른 것을 이해하겠지요.
이러한 현상은 요즘 들어서 특히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80년대 초반의 리얼, 즉 현실성을 반영한 작품으로 인해 혼란을 많이 겪고
90년대 다양한 장르를 통합하여 빠져나갈 수 없는 길을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여주던 저패니메이션.
지금은 하나의 작품에 다양한 주제를 집어넣어서 다양한 대상에게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소년 표류기를 모험으로 보는 이들과 작금의 부모(어른)와의 교류가 없는 아이들의 개인적인 성장모습으로 보는 이들.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전쟁의 슬픈 현실성과 군국주의 국가의 자기변명으로 보는 이들...
사춘기 소녀들의 학교생활을 질풍노도의 시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갈등 또는 동성의 궁극적인 변명으로 보는 이들...
고전설화를 설화적 모험담으로 보는 이들과 폭력과 힘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보는 이들...
무엇이 과연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우리 일상에 만연한 세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강물이 잔잔한 것만 보고 비가 올때 범람하는 강물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만연한 세계의 다양한 일상과 경험을 통해 그러한 경계선을 허물어야지
아니면 적어도 경계선 너머의 현상을 이해하려고 해야지만이
같은 세계에서 다른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투덜대고 욕하며 보면서 침을 흘리던 작품들
머리아파 죽겠는데도 오히려 현란한 액션에 눈이 더 아프던 작품들을
다시한번 보면서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2001년인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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